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정조는 자신의 어록인 일득록(日得錄)에서
더위를 물리치는 데는 독서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책을 읽으면 몸이 치우치거나 기울어지지 않고
마음에 주재(主宰)가 있어서 외기(外氣)가
자연히 들어오지 못하게된다고 했습니다.
정신적인 집중으로
외부의 무더위를 잊는 방법입니다.
실제로 한여름밤은 밤도 짧아서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문득 고개를 들면
어느덧 날이 밝아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1년사계 중 한여름의 무더위는
사람을 지치고 흐트러지게 만듭니다.
그래서 현대의 피서를
1년중 가장 방만하게
먹고 마시고 노는 기회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해마다 찾아오는 무더위가
우리들에게 일깨우고자 하는 건
전혀 다른 데 있습니다.
무더위 속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여유를 회복하고
자연의 리듬에 심신을 맞추라는
내밀한 각성의 메시지를 숨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조상은 그것을 알았고,
그것을 상징하는 자세로
탁족(濯足)의 여유를 즐겼던 것입니다.
거기에 술과 책까지 가세했으니
한여름의 무더위가
어찌 즐길거리가 아니겠습니까.
-박상우의 그림 읽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