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갔느냐
사랑하는 것들이여
나도 모를 어느 사이
어디로 다 가 버리고 말았느냐
그 빛나는 세월과 더불어
그지없이 즐거웁던 나의 노래여
높다란 가지 서느런 매미울음이여
가벼운 잠자리여, 제비떼여
명멸한던 나비의 책색이며
그 벅찬 남풍의 가슴이여
어디로 죄다 자취없이 사라지고 말았느냐
어느 아침 내 문득
나의 둘레를 살펴보고
나를 에워 있던 이 모든 것들
기억처럼 사라지곤
아무리 내저어도 닿을 곳 없는
크낙한 크낙한 공허 속에
내 홀로 남았음을 보았으니
이제는 발 아래 낙엽만 쌓여 짙어오고
긴긴 밤을 다시 은총같은 고독에 우러러 섰다
어디로 갔느냐 사랑하는 것들이여 . . . . .
유치환 (柳致環,靑馬, 1908-1967, 대한민국 시인)
Photo : han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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